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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싱글 여성' 농부의 '국내 이민' 성공기

입력 2015-10-16 15:15:44 | 수정 2015-10-16 15: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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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가 뭐 어때요? 내 일 하니 즐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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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어느 날, 전북 고창군 해리면에 낯선 농부가 등장했다. 170cm를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뚜렷한 이목구비의 ‘싱글 여성’ 농부 이승희(33) 씨다. 20대 후반 여성이라면 한창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며 문화적 수준도 높아지는 데다 외적인 미(美)에 대한 관심도 큰 때다. 그런데 이 씨는 이런 화려한 삶을 등지고 시골 농부의 길을 택했다.

“일바지 입고 경운기 타고 거뭇거뭇한 기미까지 얻었지만, 이게 뭐 어때요. 그래도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가끔 예전에 입던 옷을 집에서 입어보기도 하지만요(웃음). 서울에서 열심히 일해 벌어둔 돈을 노후에 병원비로 다 쓰느냐, 시골에서 적게 벌더라도 평생 건강하게 사느냐 고민했을 때 답은 나온 거잖아요.”

귀농 전 이 씨는 서울에서 10여 년간 생활했다. 대학에서 정보통신과를 전공한 그는 정보기술(IT) 회사에 취직했다. 4~5년 쯤 지났을까. 그는 사표를 내던졌다.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였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서 귀농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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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열심히 또 부지런히 일해도 보람이 없었어요. 하루 종일 업무에 쫓기며 여유 없이 살고 그런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됐죠. 도시 생활에 지쳐버리고 말았죠. 이 생활을 벗어날 탈출구로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결정했어요.”

과감했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젊음의 특권’을 선택한 만큼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호주로 떠나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100만 원과 여행 가이드 한 권뿐. 도착하고 나서야 돈을 벌 수 있는 농장을 찾았다. 미리 준비하고 알아가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돈을 벌면서 먹고 잘 수 있는 농장을 찾았어요. 하루 8시간의 육체노동은 힘들었지만 해볼 만했어요. 토마토·콩·고구마·가지·호박 등 다양한 걸 키웠는데, 재미있었죠. 제가 시골 출신이라 농사일이 낯설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즐거웠어요.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사는 농장주의 삶이 행복해 보였고 부러웠어요.”

농장에서 번 돈은 저축도 하고 여행 다니는 데도 썼다. ‘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그는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다시 시작된 도시 삶 속에서 그는 행복할 수 없었다.

“저 스스로 행복하냐고 물어봤죠. 아니었어요. 그렇게 귀농을 결심했어요. 조금 벌더라도 내가 직접 기른 음식을 먹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내 행복을 위해 더 나을 것 같았죠. 직장에선 서로 밟고 밟히면서 항상 경쟁하지만 농사는 그러지 않아도 되잖아요. 내가 땀 흘린 만큼 수확하고 노력한 만큼 거둬들이는 거죠. 농사일이 몸은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얻는 보람이 더 커요.”

이 씨는 종잣돈 2000만 원을 들고 부모님이 있는 고창으로 내려갔다. 부모님부터 오빠들까지, 가족들은 그의 귀농을 반기지 않았다. 과년한 딸이 시골에 내려와 농사짓고 산다는 게 어쩐지 동네 사람들에게 부끄러웠다. 함께 농사짓는 엄마는 4년째 ‘접고 올라가라’는 말을 달고 산다. 고생스러운 농사일을 자처해 하는 딸이 안쓰러워 나오는 말이다. 동네 사람들도 그를 색안경 낀 눈으로 바라봤다. ‘툭’하면 나오는 말이 젊은 여자가 농사를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는 식이었다. 이럴수록 이 씨의 귀농에 대한 결심은 굳어져 갔다. ‘기필코 해내리라.’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집과 농지를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외지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시선 때문에 정보의 벽이 높았다. 귀농 정착금이나 집수리 비용에 대한 정보는 행정기관마다 접수 기간이 달라 군청이나 귀농귀촌협회를 돌아다니며 확인해야 했다. 인터넷 정보가 현장 정보보다 느려 인터넷 보고 찾아갔다가 좋은 기회를 놓친 경우도 많았다.

어렵게 집은 구했지만 농지는 부모님이 가꾸던 땅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귀농 준비에 들어갔다. 인터넷으로 귀농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인 귀농귀촌협회와 농업개발원·농촌개발대학 등에서 하는 교육을 받았다. 종자 구입에서부터 수확·판매까지 1년간의 귀농 교육이 이어졌다.

처음 마땅한 수입이 없었던 그는 초기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일찌감치 보육교사·음악줄넘기·사회복지사·북아트·방과후지도·컴퓨터 자격증을 따 놓은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종잣돈으로는 집과 자동차를 사야 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올해부터 아르바이트를 모두 그만뒀어요. 농사에 더 집중하려고요. 그랬더니 살림이 좀 빠듯해졌네요(웃음).”

‘민박’ 사업에 도전 나서

이 씨가 선택한 작물은 고추와 삼채다. 고추는 고창 지역의 흔한 작물인데다 이미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재배 기술을 전수 받기도 편했다. 지역 특산물은 정해진 대로 따라가면 인지도가 있어 어느 정도 소득은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다. 어린 인삼 뿌리와 비슷하게 생긴 삼채는 단맛·쓴맛·매운맛이 있어 마늘과 양파와 같은 양념으로 좋은 데다 당뇨와 혈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추가 안정적인 수입을 위한 작물이라면 삼채는 미래를 준비하는 고소득 작물이다.

“당뇨가 있는 부모님과 작은아버지를 위해서도 한번 길러보고 싶었어요. 농약과 거름이 필요 없는 약초과 식물이라는 정보 때문에 자신 있게 도전했죠. 그런데 이유도 모르고 말라죽는 경우가 많았어요. 초보자가 키우기에는 어려운 작물이었죠. 그다음부터는 잘 자라고 있어요.”
힘들게 키운 농산물에는 ‘고창 처녀 농부’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고창 처녀 농부는 그가 스스로에게 붙인 별칭이다. 이 씨를 가장 강력하게 표현한단어였다. 이 별칭은 그의 브랜드가 됐고 현재 고창 처녀 농부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와 홈페이지는 고객들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길러낸 모든 작물의 성장부터 유통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판매까지 이어지는 판로예요. 사회에 있을 때 배운 기술이나 능력이 귀농에 쓰일 줄 몰랐어요. 묵혀두기엔 아깝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이 씨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목표로 고추와 삼채 외에도 마늘·벼·복분자·깨 등을 기른다. 처음 4958㎡(1500평)에서 시작한 처녀 농부의 텃밭은 올해 9915㎡(3000평)가 됐다. 연매출은 3500만 원. “기계·종자·땅·농약 등에 들어가는 지출이 너무 많다”며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최근 또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민박’이다.

“이제는 6차산업이 경쟁력입니다. 각박한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이 농촌 민박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요. 인근에 있는 갯벌체험장·승마장·책마을 등을 코스에 넣어 보려고요. 내년부터는 매출이 좀 플러스되지 않을까요.”

새벽부터 일을 나서 많은 시간을 밭에서 보내는 이 씨. 그래도 귀농 전 직장 생활할 때보다는 자유로운 생활이다. 단, 이 자유에 ‘책임’이 따르는 것은 거스를 수 없다.

“어차피 일에 매여 사는 것은 똑같을 수 있지만 큰 차이는 바로 내 일, 내 농사를 짓는다는 거예요. 엄청난 만족감이 있죠. 좋은 직장, 좋은 직업 같은 남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즐겁고 행복한 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처녀 농부의 조언 >

1. 철저하게 준비하라.
정보만 잘 찾으면 길은 있다. 계속 바뀌는 법과 지원 사업 내용을 수시로 체크하라.

2. 귀농자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 정보를 교류하라.
귀농귀촌학교에서 같은 시기에 귀농한 마음이 맞는 젊은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류하게 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빠른 정보 습득이 가능했다. 수확한 후 판로가 막막했을 때 같은 귀농인의 소개로 백화점 유통에 진입할 수 있었다.

3. 도시에서 마련한 모든 것을 활용하라.
10년간 사회생활하며 모아둔 종잣돈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해 정착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인맥을 총동원해 그동안 준비했던 자격증을 이용한 단기 시간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이는 귀농 초기 생활비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젊은 감각으로 톡톡 튀는 마케팅을 선보였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 BUSINESS 1034호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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