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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서 오락가락’…힘 못 쓰는 국민연금

입력 2015-11-01 13:04:53 | 수정 2015-11-01 13: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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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SK씨엔씨 합병서 서로 다른 행보, 반대 의견 거의 무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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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SK와 SK씨엔씨 합병 등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국민연금은 세계적 규모의 연·기금으로, 약 500조 원(2015년 7월 말 기준)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고 수익성·안정성 등 재무적 요인 이외에도 국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력 같은 공공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공적 연·기금이다. 이 때문에 의결권의 행사 내용과 절차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내부 절차로는 기금운용본부의 투자위원회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있다. 국민연금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까다로운 안건의 경우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의결을 거친다. 그런데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 간의 합병에서 SK씨엔씨는 의결권전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삼성물산은 개최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의결의 방향 역시 반대로 나와 논란을 가중시켰고 국정감사에서 관련자들이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다.

국민연금이 부결시킨 안건 3건에 불과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국민연금은 기관 홈페이지에 2005년부터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하고 있다. 2015년 1월 1일부터 현재(10월 16일)까지 약 1년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조사한 결과 567개 기업의 3123개 의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상장 기업의 주주총회는 크게 임시 주주총회와 정기 주주총회로 구분되며 한 해 동안의 경영 사항을 결산하고 새로운 임원을 선임하는 정기 주주총회가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은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 555개 기업에서 2973건의 의결권을 행사했고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한 59개 기업에서는 150개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안건별로 보면 정기 주주총회와 임시 주주총회 모두 이사 및 감사 선임 안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전체 안건의 43.76%가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이었고 보수 승인의 건이 29.57%로 둘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재무제표 승인의 건이 18.47%로 그 뒤를 이었다.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은 이사 및 감사 후보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투표권이 행사되므로 안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임시 주주총회 역시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이 가장 높은 비율(53.33%)을 차지했다. 이 밖에 정기 주주총회에 많이 상정된 안건은 보수 승인의 건(29.57%), 재무제표 승인의 건(18.47%) 등이었다.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전체 안건의 53.33%가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이었으며 정관 변경의 건(22.67%), 합병·분할·영업양수도 계획 및 승인에 관한 건(15.3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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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보 묶어 상장도…주주 의사 왜곡

이번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주주총회를 개최한 기업들의 공고를 보고 최종 승인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표해 실제로 부결된 것은 극소수였고 반대 의견을 제출한 안건의 비율 자체가 낮아 국민연금의 의견이 안건의 승인 여부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과 관련해서는 상정 방식과 관련해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이 왜곡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국민연금의 영향력은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의 최종 승인 여부로 파악할 수 있다. 조사 결과 국민연금은 전체 의안 중 287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했지만 실제로 그 기업에서 해당 안건이 부결된 것은 단 3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3건은 모두 이사 및 감사 선임에 관한 건에 해당됐다. 그런데 이 중 한 건은 이사 해임의 건으로 국민연금이 오히려 해임 사유가 없다며 반대한 것이었다. 해당 안건은 2015년 6월 개최된 도레이케미칼의 임시 주주총회 사례로 회사는 공동 대표이사 이영관, 니시모토 야스노부, 박찬구 씨를 해임하는 안을 4호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는 주주 제안으로 상정된 의안으로 대주주의 지분율(최대 주주 및 특수 관계인 지분율 56.85%, 2014년 12월 31일 기준)을 고려하면 승인되기 어려운 안건이었다.

배경을 요약하면 도레이케미칼의 전신인 웅진케미칼을 인수한 도레이첨단소재가 인수 당시와 다르게 회사의 자진 상장폐지를 예고하면서 소수 주주들의 반대가 시작됐고 소수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주주 제안권을 행사해 대표이사 3인을 해임하는 안건을 상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개최된 주주총회에서 해당 안건은 결국 부결됐고 회사의 최대 주주 측과 소수 주주들은 자진 상장폐지를 놓고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사측이 내세운 자진 상장폐지의 사유는 의사 결정의 효율성 제고였다.

회사가 가진 기술력이나 사업의 추이로 보아 당장 상장폐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나아가 2만 원에 책정된 주식 매수 청구권을 주주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 역시 주주로서 의견을 행사한 것이지만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사례다.

이번 조사는 국민연금이 찬성한 안건이 승인되는 것보다 반대한 안건이 부결될 때 그 영향력을 더 높게 평가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했다. 그런데 전체 안건 중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의 비율은 겨우 9.19%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은 보수 승인의 건 883건에 대해서는 9건의 반대 의견(1.02%)을 냈고 549건의 재무제표 승인 건에 대해서는 17건의 반대 의견(2.91%)을 냈다. 이 밖에 정관 변경 안건(21.78%)과 퇴직금 지급 규정 변경(16.67%), 합병 등에 관한 건(15.38%)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반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사 및 감사 선임의 건을 제외하고는 반대한 안건 중 기업에서 실제로 부결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고 모두 원안대로 승인됐다.

둘째로 국민연금의 의견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임원 선임 안건의 상정 방식과 관련이 있다. 기업이 상정한 이사 및 감사 선임안은 후보자들 각각에 대해 투표하도록 하지 않고 하나의 안건으로 묶어 기재한 것이 상당수 있었다. 즉 5명의 이사 및 사외이사를 선임하면서 후보자 5명에 대한 판단을 하나의 의결권으로만 나타내도록 한 것이다. 이때 개별 후보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주주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누락될 위험이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선임 안건(1381건)의 79.72%인 1101건은 임원 1인당 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개별 상정됐고 20.28%인 280건은 여러명에 대해 1표를 행사하도록 병합 상정됐다.

병합 상정된 안건은 평균적으로 3인의 이사 후보자를 하나의 표결로 결정하도록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합 등재 인원이 가장 많았던 곳은 한온시스템(구 한라비스테온공조)이었다. 한온시스템은 3월 30일 개최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14명의 이사 후보자(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9명, 기타 비상무이사 4명)를 모두 4호 의안으로 상정했다.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반대했고 반대 사유는 이사 후보자 3인의 장기 연임 및 이해 상충이었다. 이때 반대 사유가 없는 나머지 11인의 후보자는 이유 없이 반대를 당하게 된 셈이다.

또 세방전지 역시 3월 13일 개최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9인의 이사 후보자(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3명)에 대한 선임 안을 한꺼번에 2호 의안으로 상정했다.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찬성 의견을 표했다. 후보자 한 명 한 명은 회사의 임원으로 각각의 자질을 심층 검토해 선임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여러 명의 후보자에 대한 판단을 한 번에 내리도록 하면 주주의 의견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표명한 임원 선임안에 병합 상정된 인물의 수는 총 282명(임시 주총 7명, 정기 주총 275명)이었다. 국민연금이 공시한 반대 의견의 사유에 따르면 반대 안건에 상정된 인물 중 일부만 반대하더라도 전원에 대해 반대 의견이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282명의 후보자 중 일부의 후보자들은 안건이 병합 상정된 때문에 반대 의견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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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관투자가의 소극적 태도 ‘걸림돌’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민연금의 의견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까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견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주장 자체가 왜곡돼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이미 논쟁거리가 된 것처럼 대규모 기업집단의 합병에 대한 찬반 기준이 불확실했던 점, 절차적인 문제가 투명하지 못했던 점, 최근 소수 주주의 제안을 오히려 반대하는 사례 등을 보면 국민연금의 행보가 완벽한 모범 답안이 아니고 그 역할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국민연금의 책임이고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의 기업 감시 역할은 계속돼야 한다. 국민연금은 공적 연·기금으로서 위탁자인 국민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금의 의결권 행사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다른 기관투자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가이드라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역할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기업이 동참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의견이 그대로 수렴되지 않는 것은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개별 기업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기관투자가들이 의견을 함께하지 않으면 최종 표 대결에서 이기기 어렵다. 물론 기관투자가들의 의견이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겪는 문제들을 다른 기관투자가들은 아직 부딪쳐 보지도 않은 것이 많다. 기관투자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에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안건 분석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 기업의 안건 상정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기관투자가가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 기업 스스로도 반성과 함께 관련 문제의 개선에 나서야 한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가 활발하기 이뤄진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아직은 초기 단계로, 절차적인 문제와 기준의 문제 등 개선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 또한 이 중 상당수는 문제는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조만간 직면하게 될 문제다. 아직까지는 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완전히 틀을 잡지 못한 채 일부 기관투자가들의 선구적인 행보로 이뤄지고 있다. 이제부터 관련 문제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정비해야 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다른 기관투자가들, 나아가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윤정 SFC 선임 애널리스트 yjbae@eco-partners.co.kr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39호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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