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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의 여행…'서촌 향수'

입력 2015-11-02 14:12:20 | 수정 2015-11-02 1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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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상권지도 ④ 서촌

옛 정취 퇴색한 북촌의 대안, 주말이면 골목길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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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겸재 정선의 그림 중에는 유독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인왕산이 워낙 절경이 빼어난 산이기도 했지만 그의 근거지가 인왕산 수성동 계곡 아래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의 ‘서촌’이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서촌은 행정구역상 옥인동·체부동·누상동·누하동·통의동·통인동·효자동을 포괄한다. 서촌은 북촌과 비교해 조금 더 촌스럽고 소박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권 세력이 주로 살았던 북촌 한옥마을과 달리 서촌은 역관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겸재 정선을 비롯해 추사 김정희, 화가 이중섭, 시인 윤동주와 이상 등 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터전이었다. 인왕산을 병풍 삼은 자연경관과 함께 조선시대 예술가들로부터 이어져 온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촌을 찾는 ‘결정적 매력’이다.

양반 동네 ‘북촌’ vs 중인촌 ‘서촌’

조용하고 평화롭던 서촌이 지금처럼 북적거리는 동네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3~4년 사이의 일이다. 인사동·계동·삼청동을 중심으로 한 ‘북촌’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관광지로 먼저 이름을 알린 북촌에 프랜차이즈 로드 숍이 하나둘 자리 잡았다. 북촌 최대의 매력이었던 옛 정취가 약해진 것이다.

북촌의 명성에 가려졌던 서촌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맘때쯤이다. 한옥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지만 북촌과 서촌의 매력 포인트는 크게 다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크고 화려한 한옥이 밀집해 있는 북촌은 비교적 정비가 잘된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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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서민층이 주로 거주했던 서촌은 같은 골목 안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옥과 1960~1970년대의 낡은 주택과 빌라들이 어우러져 있다. 대략 한옥이 30%, 오래된 주택과 빌라의 비율이 70% 정도다. 남아 있는 한옥의 규모도 북촌과 비교해 소박하고 외관에서부터 차이가 뚜렷하다. 1900년대 후반 지어진 ‘생활형 개량 한옥’이 주를 이룬다. 이곳에서 실제로 삶을 영위해 온 서민들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 있다.

북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다는 것 또한 상권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북촌 상가의 월 임대료는 33㎡(10평)를 기준으로 139만 원 선이다. 서촌은 같은 기준에 120만 원 안팎이다. 삼청동과 인사동 일대에서 활동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서촌으로 모여들면서 골목을 따라 갤러리와 아트 공방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존의 한옥을 리모델링해 옛 정취와 현대적 감각을 살린 레스토랑들도 입소문을 타며 서촌의 인기를 이끌었다.

한국화의 거장인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나 독립운동가였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가옥, 시인 이상의 집 등 문화유적지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서촌 ‘골목 산책’의 묘미다. 세종대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촌은 ‘세종마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재래시장인 통인시장과 금천교시장은 또 하나의 재밋거리다. 특히 2012년 시작된 통인시장의 ‘도시락 카페 통(通)’은 한동안 사람이 뜸해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던 통인시장을 되살린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금천교시장도 2012년 ‘세종음식문화거리’로 지정되며 서민들의 먹을거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상권으로 거듭나고 있다.

서촌은 조선시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에 걸친 서민 주택 양식이 뒤섞여 있다. 그러다 보니 옛 추억을 좇아온 국내 관광객은 물론 한국 체험을 원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끊이지 않는다. 이렇듯 서촌은 ‘향수’라는 키워드가 분명한 상권이다.

신축·용도 변경 제한…한옥은 예외

최근에는 ‘서촌의 향수’를 지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과 지자체가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2011년 창간된 마을잡지 ‘서촌라이프’도 그중 하나다. ‘옥인오락실’의 주인이자 여행 작가로 일하는 서촌 토박이 설재우 씨를 주축으로 매월 발행된다. 오랫동안 서촌을 지켜 온 터줏대감들의 인생 스토리부터 서촌의 숨은 역사와 숨은 맛집까지 담아 서촌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설재우 옥인오락실 사장은 “‘사람 사는 동네’ 서촌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라며 “상권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를 잃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주민들이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도 서촌의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데 팔을 걷었다. ‘서촌 예술 벨트’ 조성이 대표적이다. 화가 박노수, 시인 윤동주를 비롯해 서촌에 모여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가옥과 근대 건축물을 ‘관광 자원’으로 묶는 작업이다. 27세에 요절한 이상이 23세까지 머무른 통의동 가옥 터에 있는 ‘이상의 집’을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첫 보전 재산으로 매입했다. 그 후 이곳은 누구나 커피 한잔을 공짜로 즐기며 이상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작품 ‘선소운(仙簫韻)’, ‘월향(月響)’ 등으로 유명한 박노수 화가의 가옥은 현재 박노수 미술관으로 개방됐다. 금천교시장 뒤쪽에 자리 잡은 체부동 성결교회는 지난 9월 서울시가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31년 이후 85년째 서촌을 지키고 있는 교회로, 서울시는 이를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등록해 보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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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서촌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이를 묶는 핵심 요소가 바로 ‘한옥’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부터 이 지역의 건축 등 개발 행위를 중단시켰다.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인 58만2297㎡가 그 대상으로 지난 2월 17일 고시된 이후 2년간 유효하다. 이 때문에 서촌 내에서 건물 신축은 물론 기존의 건물의 용도 변경도 제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상가를 새로 짓거나 기존 주거용 건물을 레스토랑 등으로 용도를 바꾸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상권 확장에 따른 무분별한 개발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다름 아닌 ‘한옥’이다. 일반 건축물은 건축, 대수선(건축물의 증축이나 개축), 신고 내용 변경, 용도 변경이 모두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옥은 주거용에 한해 신축이 허용된다. 이뿐만 아니라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 최원석 서울시 한옥조성과 팀장은 “서촌은 한옥보존지구로 한옥을 장려하고 있다”며 “한옥을 신축하거나 수선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09년 제정한 ‘서울시 한옥 보존 및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른 것이다. 한옥 대수선은 최대 보조금 6000만 원(외관 공사비), 무이자 융자 4000만 원(내부 공사비)이 지원된다. 한옥을 신축할 때에는 최대 보조금 8000만 원(외관 공사비), 무이자 융자 2000만 원(내부 공사비)을 받을 수 있다. 한옥위원회의 지침에 부합하면 평수가 작더라도 최대 한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서촌에서 주거용 한옥을 레스토랑이나 기타 업종으로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 한옥을 활용해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업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2009년 ‘한옥체험업’이 관광진흥법상 관광편의시설업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옥의 주요 구조부가 목조이며 한식 기와 등 사용해야 하고 이를 외국인 관광 도시 민박업으로 활용해야 한다. 현재 종로구에는 90개 정도의 한옥이 등록돼 있다. 최 팀자은 “이들 중 한옥체험업을 하려면 구청의 지정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로구의 한옥체험업 조합인 ‘한옥체험살이’가 활동 중이다. 한국관광공사가 2013년 도입한 ‘한옥스테이’ 제도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한옥 체험 업체를 대상으로 우수 한옥을 인증해 준다. 서촌의 한옥체험업 관계자는 “서촌 내에 11개 정도의 한옥체험업이 운영 중”이라며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 등으로 더 늘어나면 서촌 상권의 주요 업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서울시 규제로 당장은 서촌에 새로운 가게를 여는 것이 힘들어졌지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촌 상권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적이거나 역사적 색채가 강한 상권일수록 ‘고유의 정서’를 잃어버리면 상권의 성장 동력이 꺼진다”며 “향후 서촌 상권의 발달은 한옥이라는 전통문화를 어떻게 현대적인 문화와 조화해 나갈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39호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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