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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를 이기는 도쿠가와 리더십(8) 세계적인 도시 도쿄를 만들다

입력 2017-03-08 15:14:55 | 수정 2017-03-08 15: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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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를 이기는 도쿠가와 리더십(8)
이에야스, 세계적인 도시 '도쿄'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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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에도(江戶)로 불렸던 일본의 수도 도쿄(東京). 긴다 아키히로 교토대 명예교수가 쓴 ‘30개의 도시로부터 읽는 일본사’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열 때까지 에도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론 항만도시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교통 요충지였다. 이에야스가 근거지를 옮겨갈 당시만 해도 상당한 어촌 민가가 모여 촌락을 형성했다고 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한 이후 막부의 지원 아래 에도는 일본의 국정 중심지로 급성장했다. 도시 건설 초기 인구는 적었으나 대규모 해안 매립과 하천 개조 공사를 통해 시가지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오늘날 세계적인 대도시로 명성을 얻은 도쿄의 성장 뒤에는 도시의 잠재력을 미리 읽은 이에야스의 혜안이 숨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영지의 근거지를 에도로 옮긴 것은 당시 집권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호조가문이 대대로 지배하던 간토(關東)지역으로 이에야스를 몰아내 그의 세력을 약화시키려 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에야스가 간토로 영지를 이동한다고 하자 세상 사람들은 그가 오다와라성으로 입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호조의 영지를 계승한다면 중심지는 오다와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야스가 이동한 곳은 에도였다.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한적한 어촌이던 에도는 한 나라의 수도가 되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운 시골이었다. 당시 ‘에도’라고 하면 모두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황무지같은 지역이었다.

요시다 도고의 <일본 역사지리의 연구> 책에는 1598년에 만든 에도의 고지도가 들어 있다. 이 지도에 따르면 지금의 도쿄 시청과 도청이 있는 주변은 전부 바다가 육지 쪽으로 굽어들어간 해안 지역이다. 도쿄 중심지의 관청가가 몰려 있는 히비야공원의 경우 동쪽 지역은 완전히 바다로 그려져 있다.

당시 에도의 동쪽 평지는 대부분 바닷물이 밀려드는 갈대밭이어어서 사람들이 살 집을 짓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남쪽은 황량한 억새 들판이 무사시노 지역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의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와는 천연적으로 거리가 먼 황량하고 버려진 땅이었다. 군사적으로 지어진 에도성을 제외하면 어부들의 마을뿐이었다고 한다.

<도쿠가와 실기>에는 이에야스의 에도 영지 이전과 관련한 설명이 나와있다. “히데요시가 이번에 호조가문를 멸망시키고 그 영지를 모두 주군(이에야스)에게 주신 것은 호탕한 일이나 실은 도쿠가와 가문에 오랫동안 충성했던 5개국을 빼앗으려는 술수임이 틀림없다. 간토 8개주라고 하지만, 영지로 삼을 만한 곳은 4곳에 불과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지 이전의 속뜻을 파악했던 셈이다. 경쟁자였던 호조가 멸망한 만큼 히데요시의 다음 제압 상대자는 이에야스일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첫 단계로 이에야스를 교토, 오사카와 가까운 기존 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곳으로 이주시킨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히에요시의 속셈을 알았지만, 그의 명령을 순순히 따랐다. 에도성으로 들어간 이에야스는 야전군을 지휘하듯 신속하게 새로운 도시 건설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먼저 가신들에게 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영지를 지급했다. 에도성으로 이주와 영지 분배가 완료된 뒤 치안 확보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야스는 강력한 도박금지령을 내렸다. 도박하는 자는 발견 즉시 체포해 사형에 처했다. 도시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민심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

주민들이 안정을 찾자 이에야스가 취한 다음 조치는 대대적인 수로 개선 작업이었다. 제방을 쌓고 수류를 통일해 보와 용수로를 만들었다. 농사를 지을 농토를 넓히고,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황무지와 습지를 개척해 농민을 이주시켜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간토평야의 개간으로 이에야스는 일본 전국에서 가장 부유한 다이묘가 되었다. 에도의 하천을 정비하고 농지를 개간하자 간토지역이 일본 최고의 전략 요충지라는 사실이 점차 드러났다. 에도는 이에야스의 지휘 아래 계획도시로 건설됐다. 시가지 건설이 일단락된 직후 도시내 상수도 보급률이 60%에 달할 정도로 청결하고 깨끗한 도시로 자리잡았다. 이에야스는 오늘날 일본 전국을 다녀보면 느낄 수 있는 청결한 도시의 기초를 세웠다.

에도 초기 15만 정도 였던 인구는 18세기 중반 10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1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에서 세계에서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 등에 불과했다. 이에야스가 근거지를 옮긴 지 불과 100여년 만에 에도는 버려진 황무지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미래를 읽을 줄 아는 혜안이야말로 지도자의 덕목이 아닐까 싶다. 영웅은 세계적인 도시를 만든다.

최인한 한경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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