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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보는 까닭 … 황승경 음악감독

입력 2017-03-20 10:17:40 | 수정 2017-03-20 10: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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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유를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발견한다



황승경 공연예술학 박사, 음악감독

그동안, 대한민국은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격변했고 토요일마다 광장은 두 동강이 났었다. “지옥이란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구절이다. 흔히들 사후의 끔찍한 장소로 지옥을 연상하는데 반해, 거장은 사랑이 배제된 특정 상황에 처한 상태로 지옥을 규정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아름다운 실천적 사랑만이 인간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모든 갈등적 소요(騷擾)와 심화된 동요(動搖)를 야기하는 모순과 초월적으로 화해한, 구원이라는 통합의 출구를 제시한다.

자칫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이 소설은 친부살인이라는 소재로 현대 서스펜스드라마를 능가할 정도의 극적 긴장감을 상승시킨다. 재산문제, 여자문제 등 어찌 보면 요즘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막장 가정 드라마와 다를 것이 없는 소재이지만 작가는 이를 문학적, 철학적으로 승화시켰다. 흙수저 출신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 간질, 도박에 시달리며 평생 치열하고 궁핍하게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에는 인간 밑바닥의 민낯을 꿰뚫어보는 심리학적 통찰이 여과 없이 흐른다. 상투적인 예절과 우아한 규범으로 무장된 표피적 인간은 적나라하게 해체되며 그 이면도 낱낱이 드러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살인이 일어나는 날 전후 삼일, 그리고 몇 달 후의 이틀로 총 닷새간의 이야기이지만 그 양은 실로 방대하다. 특히 처음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만 400페이지에 달하다보니 하루에 전권을 모두 완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중도포기가 속출하는 대표적인 장편소설이다. 의료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연출자 나진환이 이 대작을 장장 7시간 동안 연극무대에 담았다.

물론 인간의 본질에 관한 이성적 사유와 주관적 관념은 19세기 러시아나 21세기 한국이나 같을지라도 독자에게 전하는 방식 그대로 극장관객에게 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원작에서 심오하게 파헤친 숱한 내면문제가 관객에게 진지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연출적 미장센을 최대한 활용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추상적인 대사는 관객의 집중력을 흔들 만 하다. 허나 배우들의 열연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입체적 무대장치와 강렬한 색채, 사실적 조명덕분에 관객의 시선은 인물에 고스란히 흡수되어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든다.

호색한 아버지와 연적으로 추악하게 대립하는 충동적인 큰 아들 드미트리가 살인누명을 쓴다. 그리고 형의 버림받은 약혼녀를 사랑하는 무신론자 지식인 둘째 이반과 순진무구한 수도사 지망생인 셋째 알료샤, 그리고 아버지의 사생아로 추측되는 음흉한 하인 스메르쟈코프가 있다.

유일하게 건강한 정신을 가진 셋째를 빼면 모두 ‘길을 잃고 헤매는 불안한 영혼’들이다. 카라마조프들이 절규하는 분열된 자아는 양심이라는 삶의 윤리와 탐욕이라는 음탕한 본능 속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그런데 강도와 밀도차이가 있겠지만, 이들의 자책하고 갈망하는 모습은 별나라 이야기처럼 전혀 생소하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어쩌면 이는 내면에서 무한히 자제되고 억제되는 우리의 또 다른 환영이 아닐까?
이름도 어려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시공을 초월해 대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영혼을 깨우는 힘 때문이다. 비루하고 뻔뻔한 인간들이지만, 결국에는 구원의 희망으로 내재된 고통을 어루만진다. 그들은 절대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라는 가슴 벅찬 울림을 전한다. 연출자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무대에 등장시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구체적인 무대 위 형상은 비록 서럽고 한탄스러운 세상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관객을 설득한다.

그동안 우리는 울부짖고 싶은 좌절, 미래를 향한 강렬한 열망, 배제당하는 분노와 공포로 혼란스러웠다. 소통의 전제조건은 합리적 이성도, 고조된 극한 감정도 아닌 직관적 이해이다. 이미 왜곡된 소통에 우리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제는 고통 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사랑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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