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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리즌’ 한석규의 ‘뉴 코리안 시네마’

입력 2017-03-21 08:01:01 | 수정 2017-03-21 0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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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새로운 한국 영화란 마음으로 영화를 해왔다”

한석규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연기(演技)다. 사전에서는 ‘배우가 배역의 성격이나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 일’이라고 정의된 이것을 그는 지난 1991년부터 약 25년 간 훌륭히 해내왔다.

사실 ‘훌륭히’라는 부사를 연기와 연관시키는 것은 과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90년대 ’충무로 흥행보증수표’에 머물지 않고, 지난해 SBS ‘낭만닥터 김사부’로 다시 한번 정상에 올랐던 한석규는 그런 의구심을 떨쳐내기에 충분한 연기 여정을 걸어왔다.

이쯤에서 대중의 눈에는 시쳇말로 ‘연기 만렙’에 오른 듯한 한석규의 연기를, 과연 그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증이 드는 것이 당연지사.

’2016 SBS 연기대상’에서는 수상 소감 도중 “검은 도화지가 될 수는 없을까”라며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관한 일침을, 영화 ‘상의원’ 인터뷰에서는 “영화가 추억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는 현학적인 표현을 사용했던 그였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자신만의 비유로 생각을 전달할지 관심이 집중됐다.

“소위 문화 종사자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선뜻 물어볼 수가 없다. 아마 천경자 화백도 그림에 만족한 적 없다고 말씀하셨을 거다. 하여튼 작품 말고 연기의 완성도를 보고 만족했던 적은 없다. 어떤 시퀀스, 어떤 신을 보고 ‘괜찮다. 쓸만하다’라며 만족감을 느꼈지, 연기 전체는 아니었다. 그런 게 조금씩, 조금씩 많아지는 과정을 걷는 중이다.”

햇수로 27년이다. 강산이 여러 번 뒤집힐 시간이지만, 한석규는 업(業)의 근간인 연기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을 드러냈다. 대중의 인정 속에 배우는 손사레를 치는 아이러니. 아마 그것이 한석규라는 바위가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굳건할 수 있는 힘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을 경험할 수 있는 영화가 3월23일 개봉한다. 영화 ‘프리즌(감독 나현)’이다.

완전 범죄를 설계하는 죄수들의 왕과 교도소에 수감된 꼴통 형사의 범죄 액션을 다루는 이번 영화에서 한석규는 교도관들조차 감옥 안의 절대 제왕 익호 역을 맡았다. 악(惡)이지만 동시에 왕(王)인 익호는 어딘가 낯설지 않다. 한석규는 과거 SBS ‘뿌리깊은 나무’ ‘비밀의 문’에서도 각각 이도와 영조라는 조선 시대의 왕들을 연기했던 바 있다.

“김영현 작가에게 ‘군주론’을 선물 받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책이 쓰여진 배경이나 저자의 인생사가 참 기가 막히더라. 이 와중에 ‘군주론’에서 느꼈던 것을 표현하고 싶던 작품이 ‘프리즌’이었다. ‘프리즌’에는 ’영원한 제국’이라는 부제가 있었다. 나현 감독의 큰 마음 중 하나가 녹아있는 부제였고, 영화에서 그것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한석규의 말처럼 극중 익호는 영화의 부제였던 ‘영원한 제국’을 꿈꾼다. 그러나 영원(永遠)은 개체의 속성인 유한성에 위배되는 단어이기에, 더불어 익호의 꿈은 권선징악과 상반되는 그것이기에 극의 흥미는 높일지언정 공감은 얻지 못한다. 또한, 익호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열심히 썩은내를 풍기고 다니지만, 그 배경은 설명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낸다.

“인터뷰 때마다 질문을 받았다. 익호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됐는지. 물론 악귀나 야차 같이 살아남은 과거의 익호를 표현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익호의 이미지는 표현됐을지라도 그것만으로는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왜 그렇게 됐지?’라는 의문을 남기는 편이 낫다. 전사(前史)는 아예 다루지 않는.”

한석규는 익호의 과거를 악귀와 야차에 비유했고, 그만큼 영화에서 옥중왕은 악마성을 증명하는 갖은 악행들을 저지른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새삼 떠올리도록 갖은 악행들이 무차별적으로 펼쳐지는 상황. 이런 허무맹랑함이 현실성을 띨 수 있는 힘은 배우 한석규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젠틀의 대명사였던 한석규는 ‘프리즌’에서 말 그대로 악마를 연기했다.

“어떤 한 인물을 만들 때 나와 전혀 다른 것에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불어 이제는 어떤 인물을 만들고 나를 거기에 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보단 인물이 갖고 있는 특징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익호의 악도 나에게서 찾았다. 그리고 그 악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인간한테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 했던 모든 연기 인물은 나였다.”

“극대화는 좀 그렇고, 상상력이라는 것을 첨가시켜서 빵을 부풀리는 것처럼 인물을 만들어나갔다. 이제는 몸이 기억을 하기에, 과거와 다르게 빠르게 접근 중이다.”


연기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열변을 토해냈던 한석규. 사실 그는 배우 이전에 성우였다. 그리고 MBC ‘강변가요제’에서 입상까지 했던 가수기도 했다. 돌고 돌아 배우로 거듭났던 한석규와 연기의 첫 만남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로, ‘슈퍼스타 예수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초연됐던 이 작품에서 그는 “예술적 경험”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국내 초연으로 봤다. 예수 역은 가수 이종용 씨, 헤롯 역은 곽규석 선생님, 마리아 역은 윤복희 선생님이 맡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온 몸에 전율이 쭉쭉 오르더라. 거기다 락 뮤지컬이었다. 한참 꽝꽝거리는 거 좋아할 고등학교 때인데 음악으로 락이 나오면서 거기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니. (웃음)”

“결국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 영감을 받아서 연기를 시작한 셈이다. 어렸을 때 영화 ‘혹성탈출’을 빠지듯이 봤었지만, 감동을 느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몸이 쩌릿쩌릿한 기분. 돌이켜보면 예술적 경험이었다. 몸에 전율이 일면서 어떤 감흥이 정서와 감정을 확 불러일으키는 경험 말이다. 아마 내가 그 뮤지컬을 통해서 예술적 경험을 한 듯싶다.”

‘갓(God)석규’ 연기의 시발점(始發點)이 갓의 아들인 지저스를 재조명한 작품이었다는 묘한 인연을 뒤로 한 채, 마지막으로 한석규는 영화 ‘바보선언’과 ‘인생은 아름다워’를 예로 들며 영화는 가짜라는 다소 파격적인 표현을 내세웠다.

더불어 그는 스크린의 가짜가 현실 세상의 진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쑤시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어떤 평론가, 어느 기자의 글에서도 읽었을 법한 정곡이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한석규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무게감이 컸다.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검열이 셌던 1980년대 시대 상황에 부딪힌 굉장히 은유적이고 풍자적인 영화다. 기껏 표현할 수 있었던 부분이 바보 같은 인물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춤을 추는 거였다. 그때는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이 그런 거 같다. 풍자와 가짜를 통해서 진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명작으로 언급되는 ‘인생은 아름다워’지만, 그 영화 뭐가 좋을까. 전쟁의 비참함을 소위 풍자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잔인한 장면도 없는 완전한 가짜다. 가짜 덩어리. 그런데도 우리가 보면서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가짜라는 것이 진짜를 팍 쑤시기 때문이다.”


취재진과의 인터뷰 중간 한석규는 새로움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영화를 왜 하는지 묻는 원론적 질문에 “나는 새로운 한국 영화란 마음으로 영화를 해왔다”며, ‘뉴 코리안 시네마’라는 그만의 신조어를 말해 기자를 놀라게 했다. 단어가 주는 무게감도 대단했지만, 그는 분명 과거에 ‘충무로 흥행보증수표’로 거듭났던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듯 보였다.

그의 강조점처럼 ‘흥행 배우’ 한석규의 강점은 새로움이었다. 배우가 가지는 새로움, 상업성과 작품성의 균형이 일궈낸 새로움 등 그의 입에서 나왔던 표현을 하나 빌리자면 ‘뉴(New)한‘ 것들이 그를 빛나게 만들었다. 그 시절 한석규는 정말 뉴한 배우였다.

어느새 새로움은 익숙함으로 변모했다. 그를 수식하는 ‘충무로 흥행보증수표’라는 단어도 이미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인의 노력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필모그래피가 이를 증명하며,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이번 인터뷰였다. 과연 ’프리즌’은 뉴한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한편 영화 ‘프리즌’은 3월23일 개봉 예정이다.(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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