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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뷰] 한석규, 30년 쌓아올린 공든탑 "이제 좀 쓸 만해졌다"

입력 2017-03-24 08:31:35 | 수정 2017-03-24 08: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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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부'에서 '죄수왕'으로
영화 '프리즌' 익호 役 한석규 인터뷰
'프리즌' 한석규 /사진=쇼박스 제공기사 이미지 보기

'프리즌' 한석규 /사진=쇼박스 제공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배우 한석규(54)가 쌓아올린 30년 연기 인생이 그렇다. 1990년 KBS 2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이듬해 탤런트 공채 20기로 연기를 시작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배우라는 이름으로 산 셈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국민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오랜 경력과 관록을 자랑하지만 그의 얼굴은 청춘처럼 윤이 났다. 군살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슬림한 몸매 또한 놀라웠다. 한석규는 "배우는 육체노동자"라며 "시간 날 때마다 근력운동을 한다.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흰머리가 나지 않고 주름도 없다"라며 좋은 유전자를 남겨준 어머니께 감사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 덕에 한석규는 신작 '프리즌'을 통해 새파랗게 어린 후배 김래원과 크게 맞붙었다. 이 영화에서 한석규는 교도소를 쥐락펴락하는 권력 실세이자 왕, 익호 역을 맡아 경찰 출신이지만 감옥에 수감된 유건(김래원)과 대립각을 세운다.


영화에는 모 커피 광고에서 봤던 '부드러운 남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작들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극악무도한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나현 감독에게 '왜 나예요?'라고 물었어요. 감독은 내 모습에서 익호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흥미로운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번에 '그래요, 해 봅시다'라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프리즌' 촬영 때쯤 한석규는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읽으며 심취해 있었다.

"이 영화의 소제목은 '영원한 제국'입니다. 주제와도 맞닿는 말이기도 해요. 교도소라는 집약적인 장소에서 여러 인간 군상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프리즌'을 통해 '군주론'이라는 책을 보면서 느꼈던 권력과 지배 앞의 인간 심리를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프리즌' 한석규 /사진=쇼박스 제공기사 이미지 보기

'프리즌' 한석규 /사진=쇼박스 제공


연출을 맡은 나현 감독은 몇 번의 엎어짐을 반복하고 '프리즌'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입봉작부터 한석규, 김래원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캐스팅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반 재소자들은 하루빨리 출소하는 것이 꿈이고 목표입니다. 하지만 익호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굳이 나가지 않아도 교도소 안에서 밖을 컨트롤 할 수 있거든요. 나현 감독이 훌륭한 부분은 그런 점입니다. '참 잘했네, 부럽다'라고 말해줬어요."

데뷔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한석규지만 전통적인 악역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사부'도 '익호'도 모두 내 안에 있습니다. 캐릭터에 접근할 때 생경한 인물을 만들어놓고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에서 본 캐릭터를 내 속에 들입니다. '프리즌'에서 살짝 저는 듯이 걷는데, 제 걸음걸이가 원래 그렇습니다. 차라리 다른 작품에서 제대로 걷기 위해 노력했죠. 대중이 생각하는 것만큼 디테일하게 고민하고 그러지는 않았어요. 자수하는 것 같네요."

함께 호흡을 맞춘 김래원은 영화 촬영 전부터 친했다. '낚시'라는 매개체로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았다.

"건방진 의미는 아니지만, 사실 배우로서 상대역에 대해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친한 사람들이 직업인으로 만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어요. 김래원과는 같은 취미생활을 하면서 고민도 나눠 좋은 점이 더 많았지만, 정서적 교감이 없는 배우랑 하면 나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천만에'라고 말하고 싶네요."

'프리즌' 한석규 /사진=쇼박스 제공기사 이미지 보기

'프리즌' 한석규 /사진=쇼박스 제공


'프리즌'은 한석규의 '생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2분은 촬영 1회차 분량이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12시간, 20시간씩 기다린다. 녹초가 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찍는 일도 부지기수다.

"김래원과 마지막 액션 신이 기억에 남아요. 밤낮이 뒤바뀐 채 사흘에 걸쳐 찍다 보니 삭신이 쑤시더군요. 래원이는 저보다 젊은 관계로 액션이 더 있었고요. 그 친구도 이제 사십 대라 힘들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한마디로 '개떡'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연기자가 최악의 컨디션일 때 좋은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더군요. 연기라는 것이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해서 베스트가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참 재밌고 오묘합니다. 30년차가 돼서야 그런 감정을 조금 알게된 것 같아요."

한석규는 최근에 들어서야 "연기자로서 조금씩 쓸 만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뿌리 깊은 나무' 촬영 때, 어떤 선배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아, 내가 자네 나이라면 다시 한 번 해볼 텐데'라고. 그때 뒤통수를 '쾅'하고 맞은 것 같았어요. 내 나이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구나, 난 배부른 놈이구나라고 생각했죠. 곧 쉰 살이 되는데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음을 고쳐먹은 계기가 됐죠. 나이를 먹어도 아무런 상관없는 직업이라는 것이 축복인 것 같아요. 한 해 한 해 지날 수록 '할 수 있을 때 정신 바짝 차려서 잘해야겠다' 싶어요.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있을 테니까."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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