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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엄마 현실 육아] (12) '딸·아들 낳는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요'

입력 2017-12-07 11:09:09 | 수정 2017-12-07 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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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임신 15~16 주면 태아 성별을 알려준다고들 하는데 내가 첫째 임신 했을 때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성별을 안 알려 주는 곳이 많았다. 동네 병원에 가면 은근한 암시를 통해 알려주는 곳도 있다고들 했지만 딸인지 아들인지 기대하며 궁금해하는 편이 더 설레는 것 같아서 일부러 알려 하지 않았다.

전쟁 같은 진통 끝에 아기를 품에 안았고 "딸입니다"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 딸~' 하는 뿌듯함이 들었다. 꼭 딸을 낳고 싶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친정엄마를 생각하던 그 느낌을 떠올리니 평생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안도감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것 같다.

딸 키우는 재미가 뭔지 모른 채 18개월 동안 육아의 늪에서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던 그때, 예정에 없이 둘째가 덜컥 생겼다. 첫째 때와는 달리 내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동성 형제가 서로에게 좋다고 하니 딸이어도 좋을 것 같은데 또 어떤 날은 아들이면 시어머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남편도 같이 목욕탕 손잡고 갈 아들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내가 두 명을 다 챙기려면 힘들 텐데 하는 단순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이 임신 몇 주인가가 되면 태아 성별을 알려주는 것으로 법이 바뀌어 있었다. 첫째 때는 임신 중 교통사고를 당해 왠지 모를 불안감에 대형병원을 다녔지만 둘째는 동네 작은 병원에서 초음파를 봤다.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묻지도 않았건만 "딸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남편은 집으로 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누가 물어보기라도 했나? 왜 묻지도 않았는데 성별을 알려줘. 난 모르는 게 좋은데!"라고 우회적으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날 딱 하루는 나도 왠지 모르게 아쉽고 서운했다.

둘째 임신 사실을 안 날부터 시댁에서는 큰 딸이 별 뜻 없이 하는 행동에도 "남동생 보려고 저런다", "첫째가 주걱을 가지고 놀면 둘째는 아들이다"라며 무언의 기대감을 가지고 계시던 터였다. 아직 임신 중반도 접어들기 전이었지만 아들 타령이 더 이상 듣기 싫었던 나는 병원 진료를 마치고 오는 그날 바로 "딸이래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때 그 실망하시던 표정. 어르신들은 확실히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 대를 잇는다고 생각하시니 뭐 어쩔 수 없었고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다.

시어머님은 낙심한 표정으로 "뭐? 그럼 셋째 하나 더 낳아야겠네"라고 반사적으로 말씀하셨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출산보다 힘든 입덧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는데 내가 무슨 아들 낳을 때까지 애 낳는 존재인가 싶었다.

남들은 심하던 입덧도 3~4개월이면 지나면 서서히 잦아든다는데 어쩐 일인지 난 둘째 때도 7개월이 넘도록 밥 냄새조차 맡을 수 없어 내 인생 최고의 날씬한 몸매로 임신 기간을 보냈다.

밥알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아 미치겠는데 첫째 아이 밥을 챙겨 먹여야 하는 그 최악의 상황.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르리라.

시어머님은 지금도 손주들을 끔찍이 예뻐하시고 엄마인 나보다도 더 살뜰히 아이들을 챙기시지만 아직도 손자에 대한 미련은 홀로 버리지 못하셨다.

"애가 셋이면 내가 좋은 거 아니다. 다 너희들 부부가 좋은 거지. 늙어봐라. 자식밖에 남는 거 없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까 내가 힘 있어서 봐줄 수 있을 때 얼른 낳아라. 응?"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이 얘기를 들었지만 딸 둘 키우는 재미가 요즘 여간 쏠쏠하지 않은 나는 이제는 더 이상 서운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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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할머니 집에서 놀다 온 딸의 한마디 "엄마 나도 남동생 갖고 싶어요."

"푸하하하. 뭐? 남동생? 동생도 아니고 남동생 ㅋㅋㅋ."

보나 마나 내가 셋째 낳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자 할머니께서 손녀들을 데리고 "엄마한테 남동생 낳아달라고 해봐"라고 주문하신 것이 틀림없었다.

그날 난 두 딸에게 엄마가 지금 동생을 가지면 달라질 그들의 일상을 들려줬다.

"엄마는 입덧으로 몇 달 동안 밥도 못 먹고, 낳으러 병원 가면 몇 주 동안은 집에 못 와. 그뿐인 줄 아니 밤이고 낮이고 아기는 엄마랑 붙어있어야 돼서 한동안 너희랑 키즈카페도 못 가고 산책도 못 가고 맨날 아기만 안아주고 젖 주고 돌봐야 해. 그래도 괜찮겠어?"

가뜩이나 지금도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해 아쉬워하던 딸들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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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딸 같은 아들도 있고, 아들 같은 딸도 있기 마련인데 '대'를 잇는다는 관념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딸이 너무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도 나 못지않게 아이가 예쁜 것 같다. 아들이든 딸이든 그 고생 끝에 낳은 내 아이가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딸 둘 손잡고 외출하면 간혹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이고 고것들 예쁘기도 하네.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 돼~ 더 늦기 전에 얼른 하나 낳아"라고 걱정들 하신다.

그분들은 아들 키우면서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는지, 현재 장성했을 아들은 어떤 면에서 딸보다 우월해서 '강추'하시는 건지 궁금해 진다. 내가 아들만 둘이었으면 또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아들만 있어서 어쩌나"하셨겠지 하면서 웃어 넘기는 수 밖에.

최근 일련의 사태들로 '지금 때가 어느 땐데요? 이제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라고요!!'라고 큰소리칠 수 없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쉽다.

우리에겐 딸·아들이 아닌 그냥 세상에 도움이 되도록 잘 키워내야 할 아이가 있을 뿐이다.

"딸 아들 구별말고 육아전쟁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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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맘키즈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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